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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과 이해에 대해

"만약 오랫동안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은 비전문가에게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없다면 우리가 정말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판명하는 진정한 시험은,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진 비전문가에게 지식을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마르틴 보요발트의 '빅뱅 이전'에서. 책은 읽었고, 인용부분은 프레시안 기사에서 재인용.
위의 주장에 깊히 동감해 왔으나 최근 이에 대해 물음을 던질 기회가 있었다. 왜 그래야 하냐, 그런 강박은 어디서 온 거고 어떻게 주입된 거지? 란 질문, 내가 이해한 바로는. 더 본질적인 물음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을 입증하는가 아니면 더 안전하게 얘기하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나. 
일단 아주 쉬운 반례를 들 수 있다. 내가 들은 많은 강의에서 몹시 훌륭한 강연자들이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중의 일부는 분명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겠지만 다른 일부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말하기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경제학 공부할 때 좋은 논문을 쓰는 교수보다 고시학원 동영상이 더 쉽게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고시학원 동영상에서는 수험용 경제학이고 무척 제한적인 내용만 다루지만, 그래도 그 내용을 좋은 연구자가 온다고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 학원 강사는 설명 자체에 전문화가 되니까. 
그러니까 내가 살짝 문제를 비틀어, 더 좋은 설명을 한다는 것이 더 나은 이해를 보장하지 않는 것 같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래도 물론 말하기나 설명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더라도 어떻게든 다른 사람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은가 이건 중요한 판단기준일 수 있는데, 넓게 알려진 예로 뷰티풀 마인드 영화를 들고 싶다. 영화 보고 나서 수업에서 관련된 내용이 있었기에 직접 논문을 읽어보기도 했다. 일본 학자의 정리를 인용했고, 두 페이지 짜리 논문이었다. 어려운 버전의 중간값 정리 같은 걸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원에서는 수학과가 아니더라도 좀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수학을 쓰기 시작하고 그래서 특수한, 단순화된 버전의 수학 정리들을 다시 일반적인 정리로 배운 다음에 사용하는 것이 수업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게 어떻게 생각하면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내 느낌으론 교양 수준과 전공 수준을 가르는 차이였다). 내쉬는 영화에서도 사회적 관계에 많은 어려움을 가지는 것으로 그려졌고, 학교에 있다보면 그런 특징을 내쉬와 공유하는 사람들을 찾기가 그리 어렵진 않다. 요새 내가 좋아하는 귤의 심리학 포스팅을 바탕으로 추측하면, 자기 공부에 집중력을 할애하느라 다른 어떤 것에도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그런 느낌. 남자 자취생들이 청소에 별 집중력을 할애하지 않는 것으로 비유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한 마디로 말하라면, 공부에 관심이 있지 설명이나 공유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대중적인, 비전문가를 상대로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는 존재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당분간 저 믿음을 유지하기로 했다. 일단 내가 설명과 지식의 보급이나 소매에 많이 관심있기도 하고, 내가 공부하는 내용은 내가 이해만 한다면 쉽게 셜명할 수 있는 정도의 명료한 것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ㅡ리고 많은 다른 나의 일상과 마찬가지로 다소의 물음표가 남겨진 상태에서도 일단 최선을 다하는 편이 더 나았다 과거 경험에선.  
하지만 다른 공부하는 사람들을 단지 설명에 대한 의지나 역량을 바탕으로 재단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많은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기꾼이었지만, 모두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