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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덥다 오늘 정말.

거울 보니 그리고 엄청 탔다. 한라산 다녀온 날 저녁 때 해지는 거 본다고 계속 해를 따라서 운전했는 데 그 때 무척 따가왔다. 오늘도 밖에 조금만 걸으면 온 몸을 익히겠다는 듯 해가 쏘고 있다. 오늘 뭐 일도 많고 약속도 많고.. 냉탕에서 첨벙첨벙 하고 그늘에서 늘어지게 잠 한 숨 자면 좋겠다.


제주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저녁을 먹고 바닷가 포구의 카페 한 군데를 갔다. 엄청나게 습했던 날이고 바람이 불면 팔에 소금물을 끼얹는 것 처럼 텁텁했다. 2층 카페는 에어컨을 틀지 않고 계셨는데, 그래서 인지 한삼하고, 말 할 수 없이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음료도 좋고, 음악은 쳇 베이커를 틀어 두셨는 데, 그 결합이 참 숨이 막혔다. 주위 포구 풍경과 그날은 날씨 탓 인지 카페가 불화하고 있는 모양. 나는 이메일을 몇 개 보내고 한 몇 분 쉬려던 차에, 랩톱이 그대로 꺼져 버렸다. 나중에 확인한 바론 그냥 고장, 그저 고장이 났다, 소금기 가득한 바람 때문 인지, 여행 초반 며칠 섬 전체를 감싸고 있던 구름 때문인지. 그래서 무언가 그 순간, 나도 이 일과 휴식의 균형을 이루던 여행이 한 쪽으로 기울고, 좀 뻥 섞자면 섬 전체가 한 쪽으로 기우는 듯 한 착각 마저 들었다. 뻥 좀 섞었어.

대만 사람들로 보이는 일행이 나가고 나선 나 혼자 남았다. 에어컨이 돌지 않는 카페에 앉아,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이 바다 방향을 보고 있지만 무엇도 뚜렷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 비 구름 속에 갇힌 채로 그렇게 할 일도 없고, 랩톱도 돌지 않고, 뻥 섞지 않고도 쳇 베이커와 파도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주인 분이 좋은 분 같았는데, 표정이 그리 밝지 않으셨다. 바깥에 나와서 산책을 하고, 정자에 앉아서 바다를 보는 것을 멀리서 나도 바라보았다. 무언가 날씨 탓 이었을까, 아무도 없는 카페를 나서고 곧 조명이 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누구도 더 이 먼 포구를 찾는 것은 일어나지 않을 일 같았다. 운전을 해서 돌아오는 길에도, 돌아 와서도 끊이지 않고 비구름과 파도 소리, 쳇 베이커, 고장난 랩톱, 행복해야 하는 데 그리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이 맴돌았다. 조금 비참한 쪽이 행복해요, 세스의 만화에서 나온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