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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고 있으니 사는 게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다녀오고, 빵집에 들러 빵을 사고, 멤버십 목록에 잘못 기입되어 있던 이름을 수정했다. 집에선 찾아오신 가스 안전 점검원과도 의사소통을 했다. 통화를 해도 말을 할 수 없으니 멀뚱멀뚱 있다가 끊고, 집에서 얘길 해도 그저 듣다가 끄덕 끄덕, 도리도리 하는 데 그친다. 생각 보다 그렇게 답답하진 않다. 좋은 핑계 같기도 하고. 중학교 때 선생님 생각이 잠깐 났다. 수화 동아리에서 처음에 말 안하고 미션 장소 찾아오기 시키는 얘기 들으며 신기해 했던 생각. 그리고 모래시계만 보면 이 선생님 생각이 나는데, 쇼트 컷을 친 여대나온 열혈 국문학도셨다, 모래시계가 디테일이 떨어진다며, 고현정을 고문하고 족보를 그리라고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열변을 토하시던 그 때 그 분은 오늘 같은 날 잘 살아가고 계실 지. 

사설로, 그게 한참 유행 했었다 중학교 때. 애들이 갑자기 책상에 연습장을 던지곤, 야, 족보 그려. 족보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나도 대학교에 가서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족보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것도 나중에는 아주 나중에는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