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 2016. 1. 31. 13:28

너무 오래 일기를 안 써서 키보드 잡고 뭘 쓰는 게 어색하다. 겨우겨우 작년에 시작했던 일 마무리하고, 졸업을 했고 그러면서 잠깐 독일 다녀왔다. 춘천 돌아와서 몇 주는 꼼작 안고 쉬었고, 손님이 몇몇 찾아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게 전부다. 서울 한 번 다녀왔고. 

이제 정말 길고 길고,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했던 학생 생활이 끝났다. 작년 6월에 한 번, 8월에 한 번, 10월에 한 번 그렇게 선언했지만 정말은 이번에야 느꼈다. 아 이제 정말 더 이상 학생이랄 도리는 없구나. 그리고 마음이 꽤 무거워지고, 예전 보단 퍽 귀도 얇아져서 예의 선학; 들의 충고에 그 전보단 더 많이 흔들리고도 한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공부하고 적당히 월급 받고, 혼자 여기서 살고 있다는 사실엔 안도한다. 강릉에서 라디오 PD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입버릇 처럼 했는데, 춘천에서 연구원이니 그리 나쁘지 않다. 혼자 사는 법도 꽤 늘었고. 집 바로 옆에 바다 대신 강이 꽤 근사하게 흐른다, 바다 대신 강이고 그리고 이영애가 닮은 여자도 있으니 괜찮은 날들이다. 

여기 저기서 영혼까지 모은 오디오 설치가 오늘 끝났다. 깨끗한 소리가 나오고, 십원 한 장 안 들였다는 게 뿌듯하다.. 앞으로도 안 들여야 하는데 약 엑스 엑스 원 정도 들이면 좋을 것 같은 부분이 있긴 하다. 말미를 조금 남겨 놔야 함 여기서 단언하지 말고 그러니. 중간 중간에 손을 좀 써서 집에 조명도 좀 갈고, 학교에서 버리는 사무용 가구도 꽤 주워다 설치를 해서, 이제 좀 내 동굴 같고, 정이 들었다. 춘천엔 나는 얼마나 오래 살게 될 까? 무언가 하나를 집에 가져다 둘 때 마다 그 생각을 한다. 이 짐을 싸는 날이 언젤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번 씩 집안 잡동사니들을 돌아본다. 칠판도 큰 것 두개나 붙였고, 큰 테이블도 두 개나 가져다 두었는데, 무거울 것이다 아마 울면서 짐을 싸고 있다면.  


새로 시작한 연구는 많은데, 막상 끝을 보아야 하는 몇 가지에서 고역을 치른다. 이건 정말 성격인가, 업보인가 모르겠는데 항상 끊고 싶어하는 이 고질적인 습관에 지치는 주말이다, 사실, 마감이 있다. 마감이 있고, 중요한 일이고, 또 굉장히 많은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정말 거의 다 된 일 이다. 마지막 집중력을 보여서 끝내야 하는데, 이제는 정말 이 순간까지 밀려오지 않고 싶다. 항상 바쁜 중에, 제일 중요한 순서대로 일을 챙기지 않는 게 내가 깨달은 건 고등학교 즈음이다. 내 한계, 질병이자, 언제나 내 발목을 잡는 존재. 머리 속에서 잘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지 않는 병 중의 병. 


그래서 어제는 하라는 일은 안하고 집 앞 산엘 올라갔다, 우동과 올라간 산은 춘천의 진산이라는 곳으로 처음으로 여기 와서, 강물을 굽어 볼 기회를 줬다. 굽이 쳐 흘러나가는 곳이라 얼음이 꽤 단단히 지난 주 부터 얼어 있었다. 물이 생각보다 많구나, 혼자 생각했다. 그 뒤엔 주로 우동과 여기서 발견한 담비 분비물에서 시작한 경관생태 얘기를 했다. 여기가 고립된 서식지라 담비가 있을 곳이 아닌데 희한하게도. 서식지 파편화, 고립의 지시자로 담비 서식 여부를 쓰려던 그림에 다소 반대되는 증거라.. 아, 이게 새로 시작한 큰 덩어리 중 하나다 참. 경관 생태.. 2006년에 시작해서 이제야 무언가 진지하게 되고 있는 오래 묵은 내 할 일 목록 위의 그것. 작년에 꽤 준비를 했고, 부족하지만 보고서가 하나 나갔는데 다시 읽으면 부끄럽고.. 올 해에 잘 하기 위해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그래프 이용한 서식지 연결망 분석이 지난 10년 간 어떻게 발전했는 지 부터 보고 있고, 어떻게 생각하면 많이 발전했고 어떻게 생각화면 2001년 즈음 Urban 과 Keitt 연구에서 그렇게 많이 나아가지 못한 것도 같다. 다 그때 나왔던 얘기의 변주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 연결망으로 간략화 하면서 버려진 정보를 어떻게든 필요한 부분만 다시 넣어서 연결망 분석 결과 보완하는 것 이상이 있는지 찾고 있다. 우동이 10년 정도 모은 야생동물 자료가 있다는 게 큰 재산인데, 구슬로 치면 한 삼십 말 정도 된느 것 같다. 보배화, 올해엔. 


분석으로 들어가면 최근엔 알파고 얘기 흥미있었고, 네이쳐에 논문이 나갔다고 해서 찾아보려는 참이다 - 마감 끝내고, 물론. 내가 국내 미디어 보다 한 6개월에서 1년 정도 빨리 정보를 접했던 것 같다. 요새는 뭐, 작년에 내가 가졌던 문제 의식이나 아이디어는 널리고 널려서 뭐 새로울 것은 없다. 실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 데.. 여튼 짬짬이 계속 해서 많이 올라오긴 했는데, 그러다가 해외 연구 나온 거나 보면 부끄럽다. 엄청나게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데 이렇게 나는 곁다리로 하면서도 놀 거 다 놀고, 따라갈 수 있는 건가.. 뭐 그런 고민 잠깐 잠깐 한다. 여튼 간단히, 딥 러닝 이용해서 토지이용 토지 피복 분류하는 것과 사막화 탐지하는 것, 야생동물 사진 자동 해석하는 것, 경관 형태 분류하는 것 이렇게 네 가지 주제를 놓고 진행하고 있다. 학교에서 하는 일이 아니어서 시간이 부족한 게 아쉽고. 


그것 말고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 주제로는 주로 건조지대 연구. 사막화 기작이나 건조지대 동물 떼죽음 원인 분석, 가뭄과 식생 고사 원인 분석 등을 주로 한다. 위성 영상 주로 이용하고, 주로 그래서 컴퓨터만 잡고 있고, 논문 읽고, 그런 생활. 예전 보단 방법론이 아닌 문제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가뭄이랑 사막화에는 정이 조금씩 들고, 앞으로 한 5년은 더 해 볼 수 있는 주제 아닐까 생각한다. 더 좁게 연구 범위를 설정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분석으로 오면 다 통한다는 괜한 고집인지 오기인지 있다. 분석에선 통할 수 있어도 이야기 자체는 다 다르기 때문에, 한 연구자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생각도 하는 데 말야. 아직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너무 여러가지 방법으로 다 어떻게든 하겠다는 그런 좋지 않은 고집이 남아 있다. 이건 어디서 왔을 까 홈즈랑 한 번 얘기해 본 적 있었는데, 그 원인에 대해선 적기가 좀 그렇고, 결과적으로, 그런 습관이 악영향을 더 많이 끼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 많은 걸 생각하고, 더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것이 결코 학문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결코 항상 좋은 것 만은 아니란 생각이 아마, 마흔이 되어가는 내가 겪는 가장 중요한 전환일 것이라 생각했다. 뭘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생각 점점 더. 


여러가지를 대충 막 어떻게 하면서 30대를 보냈다. 어떻게 어떻게 겨우 겨우 막아 가면서 말야. 


결론은, 이영애와 전지현이 닮은 여자 친구 여신님이 있으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