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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마무리

토요일날 스카이를 돌려보냈다. 칼럼네 여행간 동안 일주일 조금 넘게 데리고 있으면서 매일 세 시간 정도 걷고 뛰어서 좋았다. 얘가 가만히 있질 못하는 두 살 짜리 청춘이라, 그리고 대형견이라 집에 두면 안쓰럽기 그지 없고. 올해 얘랑 산책 다니면서 인적이 없는 산이랑 들을 몇 군 데 찾았다. 가서 풀어 놓으면 쉬지 않고 뛰노는 데 보면 더욱 안타깝다. 이렇게 뛰어야 하는 애를 집에서 키우는 게 얼마나 못 할 짓 인가 하고. 예전 나의 다롱이 생각을 하고 얘기를 많이 나눴다. 생각하면 생각 할 수록 미안하고, 죄였구나 그게, 그 불만이 가득찬 눈매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십 년이 넘게 키웠구나 하고 늦은 후회. 스카이는 그래도 즐겁게 살고 있고, 이 산골짜기에서 그래도 하루에 두 세 시간은 뛰어 놀면서. 

스카이 데리고 있는 동안 나도 그냥 덜컥 쉬었다. 할 일이 장작 처럼 쌓여가고 그에 기름이 부어져 불안할 즈음 보냈고, 그 때 부터 숨도 안 쉬고 잠도 안 자고 일을 했다. 코스타리카하고 시애틀 회의 무사히 마쳤고, 다들 좋아해서 기뻤다. 흥미롭기도 하고, 고생 끝에 낙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크래프티랑 매딩리, 레인지쉬프터 등 모델링 회의가 이 번 주에 네 번 정도 있었다. 안네랑 하는 UAV기반 바이오매스 추정도 고생끝에 마쳐서 이제 빈 출장가서 발표만 하면 되고 그렇다. 영국 호박벌 분석도 몇 날 밤을 샜는데 이건 계속 진행. 유럽 바이오에너지 계속 그림 그리고 회의하고, 그 와중에 플로스원 리뷰 하나 냈고 ESD논문 최종 게재 허가 났고, 박사 과정하는 학생이 쓴 논문 프루프리딩 하고, 클러스터 관리하고 샤이니 앱 수정하고 너무 미친 사람 처럼 여러 가지 자료를 대량으로 다루고 있어서 이상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그런데. 지금 진지하게 하고 있는 분석이 열 가지가 훌쩍 넘는데 이게 정상적인 생활 리듬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의구심이 자꾸 들고, 성격도 나빠지는 것 같고 못내 불안하다. 그 중에 그래도 반 정도 이번 주에 끝을 낸 것 같지만, 이럴 땐 아직도 콜라가 반이나 남았네 하는 땐 긍정적인 마인드는 짐이 된다.

결국, 숨도 못 쉬고 며칠 일을 하다가 갑자기 급격히 우울해 졌다가 돌아오길 몇 차례 반복했다, 정리하자면. 기쁘다가, 슬프다가, 행복하다가,  괴롭기를 쉴 새 없이 반복하는 것 아닌가, 불안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해야 할 일이, 내가 해내면 세상에 도움이 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할 수 있게 내 정신과 몸뚱이를 잘 지탱하고 있는가 불현듯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게으르지 않기, 책임감 가지기, 힘들 때 하느님에게 의지하기, 이 걸로 전부 해결이 될 거라고 아직은 믿고 있다. 이 믿음이 내 밑바닥 아닌가.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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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티로는 사회 제도가 토지 이용을 결정하는 행위자의 특성에 영향을 줘서 결과적으로 토지 이용과 생태계 서비스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 연구하고 있다. 여기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제도 연군데 진도를 많이 못 나가서 이제 뒤늦게 속도를 내고 있다. 이게 잘 되면 정말 의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늦어져서 조바심이 난다. 기술적인 준비는 이제 2년이 되니 거의 됐고, 팀 안에서 호흡도 잘 맞고, 좋은 편이다. 그냥 막 며칠이고 실성한 사람처럼 하면 결과가 나올 것 같은데 그 며칠을 잘 못 내는 것 같다.. 는 생각을 2년 간 했다. 이제는 그래서 좀 일 하는 방식을 바꿔서, 보통 사람처럼 일을 하되 체계적이고 단계적으로 진행을 해 보려고 노력 중이다. 자주 회의를 가지고 진도 평가하고, 좀 멀쩡한 삶과 일의 조화란 것이 내 인생에서도 가능하다.. 이번 주말의 실험이다. 주말 업무 계획이 있다는 것도 문제의 소지가 있으나 이건 다음 생에 고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