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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이어온 시절의 끝

끊임없이 돌아보던 시절이 끝이 났다. 홍재한테 혼나면서도 끊임없이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시기를 이번 일을 계기로 마무리 했다. 믿었던 사람을 계속 믿을 수 있는지, 배울 것이 있던 매체에서 여전히 배울 수 있을 지 나오는 기사나 오피니언 들을 살폈고, 조심스러워 묻지는 못했으나 간혹 주위 사람들 의견을 알게 될 때 마다 웃기도 울기도 했다. 여전히 내겐 홈즈가 있고, 착하신 왕이 있으시고, 아내 그리고 나에게 여전히 믿음을 주는 이들이 있음을 확인했다.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공감하기 어려운 말씀을 자주 하셔서 멀리 했던 어느 경제학자 분도 이번에 마음을 달래주는 글을 여럿 쓰셔서 고마웠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음으로서 소극적이나마 의사를 표현했을 거라 짐작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도 지금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건 무언가 길게 이어져 오던 것이 끝나고 새로운 것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아닌가 한다. 다만 그것의 불분명한 정체에, 어떤 앞날이 펼쳐질 지에 대한 불안함은 지울 수 없다. 

이곳에 적기엔 어려움이 있다만, 지난 주에 우린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겠다'며 머리를 맞대 고심했다. 조금 더 이곳에서의 앞날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머리 속이 좀 더 정리가 됐다. 나에게 앞으로 10년이 있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해 왔는데 이젠 5년이 있다고 생각하고, 난 그 5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 지, 그림을 그려본다.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세상에 내 놓을 것 인가.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연구를 한다고, 박사 과정 중반 까지 많이도 떠들고 다녔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그걸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러웠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건 틀리지 않았고,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고. 

시작의 끝이란 말을 했다, 이번 주에 오랜 친구에겐. 한 시절의 끝, 길게 이어져 왔던 어떤 시절이 여럿이 동시에 끝이 난다. 난 준비가 되어 있고, 아직 마음이 무뎌디지 않았으며, 좋음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도 남아 있다. 다행이고, 고마운 일 입니다. 세상이 걷잡을 수 없는 무너짐으로 디뎌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불안하고, 어떤 앞날이 펼처질 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힘드나, 오늘도 성당에 가선 그렇게 기도했다. 제가 무언가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쓰임이 되게 해 주셨으면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