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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엔

'비도 오고 기분도 그렇고 해서' (노래 가사 인용) 집에서 평생 미뤄놓던 일을 하자는 방침을 정했다. 락스로 구석구석 청소하고 세간살이 헤집어서 버릴 것 버리고, 나눠줄 건 가방에 담았다. 역시나 버릴 것이 많은 데다가, 쌓아두는 데 제약이 많은 사정이다 보니, 평소 보다 조금 더 과감했다. 버리고 차 끓여 드시고도 비가 안 개서 점심 거르곤 누워서 그저 책이나 읽었다. 어제 사무실 정리하다가 - 그렇다 정리의 시간이 온 것이다 - 책 두 권 집어왔는데, 홉스봄 책 중에 다 끝내지 못한 게 있었다. 재즈 쪽 이야기는 세 번 정도 읽은 것 같다. 비 오고, 낮이니까 음악 크게 틀어두고, 몇 주 뇌를 찜기에 넣은 듯 찌고 짜내던 걸 잠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점점 더 부족한 부분이 크게 보인다 요 며칠은. 그 고비를 통과하기만 하면 단정한 논문을 낼 수 있을 것 만 같다 여전히. 지금까지보다 한껏 더, 과감 해져야 한다. 버릴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날은 금새 추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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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소용 없이 검색엔진에 걸리는 수가 줄지 않아서, 대책을 마련 중이다. 일단 워드프레스 쪽을 봤는데, 거긴 검색이 더 많이 들어올 수도 있고해서 망설여진다. 처음 블로그 시작할 때로 돌아가서, 후미진 서버에 설치형 블로그나 게시판을 하나 붙이고 써야 하나.. 사실 센터 일로 계정도 몇 년 째 유지하고 있고, 사비로 운영 중이니 뭐 개인 블로그 설치해도 무방하다고 판단.
나는 인터넷에 실명, 혹은 완전하게 정체가 드러나는 아이디가 아니면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2000년에 나우누리 컴공과 게시판에 글 올렸다가 한 번 언짢았던 이후엔 사실 블로그가 아니면 글이랄 걸 거의 올리지 않지만, 그래서 이 곳에 대해 항상 변태적인 욕망을 품지 않으려고,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가급적이면 사석에서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소를 알리고. 지금 내가 알고 있기론 이 곳을 와 볼 수 있는 사람은 다섯 명이 넘지 않는다. 네 명 아니면 다섯 명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구태여 큰 단어를 가져오고 싶지 않기 때문에 우스운 표현을 쓰자면,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봐주세요 란 마음으로 어떤 것도 적지 않으려는 이유다. 허나 완벽하게 행동하려면 아무 것도 적지 않아야 할 거란, 마음과 몸 사이의 거리를 무시할 수 없다. 네트에 왜 아직도 무언가를 적고, 사담을 늘어놓고, 그렇다고 그걸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지, 떠다닌다는 표현을 쓴다면, 왜 매번 접안할 부두를 달아 놓는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지 못했다. 사라지고 싶다는 선언은 언제나 궁벽하게 들린다. 사라진 사람들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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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였는지 H2 였는지 정확치 않은데, 그러니까 타츠야인지 히로인지 확실치 않은데,

"습관이 될 까 봐" 란 대사가 요새 내 결단, 결정을 대부분 움켜쥐고 있다. 대충 하는 것, 빨리 끝내는 것 그런 것 습관이 될 까 두렵단 걸 이유로, 천천히, 좀 더 완전하게 만들려고 하는데, 사실 이게 한 꺼풀만 밖에서 봐도 무한히 지지부진 하는 거라서, 나도 알아 그게 문젠 거. 그래도 이게 인생 마지막 논문 일 지도 모르잖아. 내가 기억하는 메멘토 모리는 이런 거라서. 

별개로, 재밌는 건, 메멘토 모리가 흔히 문학적인 표현으로 인용되곤 하는데, 책 읽다보면, 이게 중세 시대 가톨릭의 일종의, 종교적 미덕으로 신자들에게 강요되던 것,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 영화 주인공이 차분한 일상 속에서 아.. 메멘토 모리야.. 하는 거랑, 교회에서 신부님이 미사 집전하면서 여러분 메멘토 모리 아시죠 이번 주에도 잊지 마시고, 하는 거랑 느낌은 퍽이나 다르다, 재밌다.  여러분, 다 부질없고 죽으면 끝이예요. 천당 가야죠.  

또 별개로, 에스겔이랑 빌립보서를 동시에 보니, 성경을 자구 그대로만 믿는 것 위험하단 생각 또 들었다. 에스겔에선 이 더러운 할례도 안 받은 것들을 성전에 받아서 니가 망쳤어 니가 미쳤어 벌 주겠어 하는 반면,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진짜 할례가 뭔지 알어 니네? 몸에 칼 댄다고 다 할례파가 아니야..  찾아보면, 이미 수 많은 연구자들이 찾아둔 것을 보면, 성경에 모순되게 해석되는 부분은 뭐 엄청 많다. 몇 백 년 이상 전해지며 고치고 또 고쳐진 책이니까, 간단히 생각해 봐도 수긍이 간다. 거기까지 인정한다고 해도, 뻗어나가는 방법은 정말 제 각각인데, 나 같은 경우는 여러 사람의 노력을 거쳐 하나님이 좋은 해석을 계속 업데이트 해 주고 계시다고 믿는 쪽이다. 홍해가 갈라졌다는 말을 갈대밭이 갈라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 접한 적 있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5천 명이 아니라 5천 명을 책임지는 몇 명이랑 식사를 하신 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안티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들이 아니고 다들 나름 독실한 교인들인 경우도 많고. 한 쪽에선 할례를 하라고 하고 한 쪽에선 안 해도 괜찮다고 하면 개인 입장에선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지만, 그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신학적 해석을 찾아보는 편이, 혼자 해결하겠다고 끙끙대거나, 정말 조악하게 - 지 맘대로 - 결론 내 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땅에 너희 영원토록 있게 하리란 말씀 몇 주 전에 읽은 다음에 들었던 생각이 조금 살 붙은 건데, 그걸 지금 신학, 종교학에서 어떻게 보는 지 검토해 봐야지 그냥 야 성경에 이렇게 써있으니까 이 땅 내 땅,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걸 기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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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겠군. 

교수님 출타로 강의를 학생들이 나눠 맡게 됐는데, 다들 후달려하고 있음;; 변교수를 기대하고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만족을 시킬 까..  수요일 점심 되면 좀 다시 살 만 해 지겠군..  
열심히 해야겠다는, 또 잊지 못하고 의욕에 불타고 있다 @_@